[글로벌 헬스 와치 6판 요약 발제문] D1장: 세계보건기구(WHO)와 팬데믹의 정치

한국민중건강운동은 2023년 3월 6일부터 7월 10일까지 [글로벌 헬스 와치 6판: 팬데믹의 그늘에서] 함께 읽기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세미나에 함께 하지 못하는 분들과도 책의 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요약 발제문을 차례로 올립니다.

글로벌 헬스 와치 6판 함께 읽기 세미나 안내문 바로가기

 

발제 일자: 2023.06.12 / 발제자: 장효범

 

서문

  • 코로나19 판데믹을 국제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시도는 국가들의 이기적인 행태로 분열되었지만 동시에 리더십과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 판데믹에 맞서 과학계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냈지만, 다국적 제약회사와 고소득 국가들은 이 기술적 성과를 공유하기를 거부했다.
  • 국가의 부강함이 효율적인 대응으로 꼭 이어지진 않은 반면, 빈곤과 차별로 인한 취약계층의 피해는 너무나 예상가능한 것이었다.
  • 코로나19 판데믹에서 얻어진 경험을 통해 현재 국제적 공중보건 위기 준비를 위한 세계 보건 거버넌스 체계의 문제들을 짚어볼 수 있다. 또한 그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인 권력, 구조, 역학을 살펴볼 기회 또한 얻게 되었다. 
  • 이 장에서는 판데믹 예방·준비·대응의 정치경제에 초점을 맞춰 이 근본 요인들을 살펴보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더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민중 운동 투쟁이라는 맥락 하에서 더 효율적인 위기 관리가 가능할 것인지 탐구해 보려 한다.

 

전지구적인 코로나19 경험

  • 판데믹에 대한 초기 국제적 대응은 중국에서의 대응에 기틀이 잡혔다. 우한에서의 유행 전파 차단 속도는 놀라웠지만, 이는 병원과 의료인에 엄청난 부담을 지웠고 매우 심한 락다운 조치를 수반했다. 중국에서의 유행이 잡혀갔지만 세계 전체적으로는 감염 전파와 감소 양상의 반복이 뒤따랐다.
  •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망률도 매우 불평등한 양상이었다. 2021년 4월까지 약 720만명의 의료인이 감염되어 7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개인 보호장구 등 열악한 시설 및 장비와 의료용 산소의 부족 등 문제가 빈곤국에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 판데믹 관리의 성과가 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베트남·대만·중국·뉴질랜드 등이 성공적이었고, 미국·영국 등 유럽 국가들, 브라질·인도 등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햇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과 영국은 2019년 기준 국제 보건 안보 지표에서 최고로 잘 준비된 나라로 꼽혔지만 실제 판데믹 발생 후 최악의 피해를 본, 정치가 공중 보건을 망친 사례가 되었다.

 

세계보건기구의 코로나19 대응: 정치적 긴장

  • WHO의 판데믹 대응은 국제보건규약(IHR)에 기초한다. IHR은 1851년부터 간헐적으로 열린 국제위생회의에 계보를 두고 있는데, 이 회의는 본래 대륙간 콜레라 유행 발생시 격리와 국경 봉쇄 조치로 인한 정치적 긴장 때문에 열린 것이었다. 1969년에 채택된 규약은 무역과 질병 통제간 긴장을 관리하기 위해 합의된 체제를 만들어냈다.
  • 무역과 보건 간의 모순은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유행 발생과 함께 전면에 돌아왔다. 중국괘 캐나다가 관광과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전염병의 심각성을 축소시켰다는 비난을 받은 것이다. 당시까지의 IHR은 유행병이 발생한 해당 국가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정보 공개에 의존하는 체제였는데 이것의 한계가 지적되었다. 이에 IHR은 2005년에 개정된는데 주된 내용은 WHO가 해당 국가의 직접 보고 외 비공식 혹은 미디어를 출처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 IHR에 가입한 당사국들은 질병 감시체계, 실험실, 국경 감시 등 이른바 핵심 역량을 갖출 것을 요구받는데 많은 중저소득국에게는 갖추기 힘든 기준이 많았고, 이들은 IMF나 미국 주도의 국제보건안보의제 등 고소득 국가와 기업, 재단 등으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아왔다.
  • 2005년 개정된 IHR에서는 기존에 있던 해당 국가가 WHO에 특정 질병 유행 사태를 보고해야 하는 규정을 국제 공중 보건 위기 비상 사태(PHEIC)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대체했다.

 

  1. 국제 공중 보건 위기 비상 사태냐 아니냐
  • IHR에 따르면 WHO 사무총장은 비상 사태 위원회를 소집해 PHEIC을 선언 여부에 대한 조언과 비상 상황 발생시 기술적 조언을 들을 수 있다. 
  • 코로나19에 대한 첫 비상 사태 위원회는 2020년 1월 20일에 소집되었지만 PHEIC 선언 필요성을 합의하지 못했고, 주된 원인은 사람 간 전파 여부에 대한 인지가 늦어서였다. 중국의 보건 당국은 이미 사람 간 전파가 일어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갖고 있었지만 중국 정치 지도자들은 대중 혼란을 우려해 사람 간 전파가 명확하지 않다고 되풀이하였다. 이는 중국 내 누리꾼들의 분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비난을 커지게 했고 다른 나라들이 적절한 계획 및 대응을 갖추는 걸 지연시켰다. 마침내 중국 정부에서 사람 간 전파를 인정했고 WHO 비상사태 위원회는 1월 30일 재소집되어 PHEIC을 선언했다.

 

  1. 무역, 여행, 국제보건규약
  • WHO의 판데믹 초기 대응을 제한한 원인 중 하나는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무역과 보건 간 긴장 관계였다. 판데믹 첫 달만 해도 WHO는 중국에 대한 어떠한 여행 제한도 반대했고, 이후에도 조금씩 변화는 있었지만 여행제한 반대 기조는 유지되었다. 허나 2020년 7월에 이르면 이미 192개의 국가 및 영토 지역들이 IHR에 규정되지 않은 국제 교통을 방해하는 추가 조치를 단행하고 있었다. 사람의 이동을 제한함으로서 질병 전파를 차단하는 방법은 유행병 통제의 기본 원칙이고, 여행 제한을 통해 전파를 효과적으로 차단한 국가들은 경제를 일찍 개방하고 경제적 손실도 적었다.

 

  1. 마스크를 쓰냐 마냐
  •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호흡기로 감염된다는 것은 명백했지만 단순 비말 감염인지 비말에 더해 에어로졸 감염이 가능한지는 초기에 논쟁의 대상이었다. 단순 비말 감염 이론에 따르면 기침 등 증상이 있는 환자를 찾아내 비교적 짧은 거리 제한을 유지하고 전파를 시킬 수 있는 환자가 마스크를 쓰고 격리를 쓰면 된다. 에어로졸 감염 이론에 따르면 증상 초기 단계 혹은 무증상 인구도 감염 전파가 가능하고 훨씬 먼 거리에서도 전파가 가능하기 때문에, 거리 두기를 더 광범위하게 해야 하고 마스크 착용도 집단적으로 하고 실내 공기 환기 등에도 더 신경을 써야 했다.
  • WHO 전문가 집단 의견은 초기에는 비말 감염 이론을 지지했고 실외 마스크 착용은 불필요한 것으로 권고했다. 그 와중에 에어로졸 감염이 가능하다는 근거가 점차 축적되고 있었지만, WHO에서 2020년 2월 내놓은 권고는 여전히 마스크의 광범위한 착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이는 의료현장 일선의 의료인들을 위한 마스크가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WHO가 이미 무증상 감염이 드물다고 판단한 정책경로의존 함정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1. 인력 및 재정난
  • WHO의 2014년 에볼라 유행 대응에 대한 심각한 비판 이후, 회원국들은 2016년에 WHO의 본부, 지역, 국가 레벨을 아우르는 단일 보건위기대응 조직 (WHO 위기대응 프로그램, WHE)을 만들고, 1억 달러 가량의 위기대응 비상 기금을 조성하는 데 합의했다. 이후 WHE는 나름 보건위기 대응 경험과 역량을 축적했지만 회원국들은 기금을 출연하는 데 인색했고 코로나19 발생 시점에 WHE는 수백명이 부족하고 비상 기금도 1억 달러에는 크게 못 미치는 상태였다.
  • 판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4월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2년간 9억 달러 가량의) WHO 의무분담금 납부 중지를 선언했다. 중국 정부가 사람 간 전파가 확실하지 않다고 한 걸 WHO가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미 정부의 비판 요지였다. 7월에는 미국이 WHO를 탈퇴할 거라고 선언했고, 조 바이든은 대통령 선거에 승리시 이 결정을 뒤집을 거라고 즉각 선언했다 (그는 대선에 이기고 실제로 탈퇴를 철회했다.) 미국의 WHO 탈퇴는 다자주의를 거부하고 중국을 고립시킨다는 트럼프 정부 외교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었지만 유럽 등 다른 국가들은 이에 반대해 오히려 WHO 지원을 늘였다.

 

독립 위원회와 코로나의 기원에 대한 설

  • 2020년 5월 WHO는 외부 독립 위원회에 코로나19에 대한 국제 공중보건 대응을 평가하고 미래 역량에 대한 권고를 맡겼다. 이 판데믹 준비 및 대응 평가 독립 위원회(IPPPR)은 2021년 5월 세계보건총회에 첫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주된 논지는 여러 결정적인 순간에 역량의 부재와 대응의 실패가 질병 유행을 판데믹 수준으로 키웠다는 것이었다. WHO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해서도 회원국들이 WHO에 맡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도록 오히려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리더십의 부재와 악화되는 지정학적 긴장이 국제기구와 다자주의를 약화시켜 WHO의 대응은 미약하고 늦을 수밖에 없다고 하며, 판데믹 조약을 창설할 것을 권고했다. 
  • 2020년 세계보건총회에서 이루어진 결정 중 하나는 WHO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동물 출처와 사람 전파의 기전, 중간 숙주를 찾아내기 위한 조사에 착수하라는 것이었다. 우한 현지 조사는 2021년 초까지 지연되었고, 중국 및 국제 전문가들의 연합 조사단의 결론은 박쥐로부터 중간 동물 매개를 통한 사람으로의 전파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설이며 실험실 유출은 별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했다. 이미 인간의 자연 생태계 침해가 점점 자주 일어나는 판데믹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늘어나는 가운데, 바이러스의 기원과 전파 경로를 자세히 알아내는 일은 미래의 판데믹 예방과 조기 발견에 중요할 것이다.

 

* D1.1 인수공통 전염병의 생태학

  • 새롭게 나타나거나 재출현하는 감염병의 생태학적 차원에 대해서는 많이 인지가 되고 있으나 생태학적 경로의 정치경제학은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03년 중국 광동에서 시작된 SARS 유행의 교훈은, 인간의 생태계 침해가 박쥐와 사향고양이 간 바이러스 전파를 촉진했고, 인간이 사향고양이 서식지에 가까이 살게 되면서 사람과 사향고양이 간 바이러스 전파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 1997년 조류인플루엔자 (H5N1) 유행 또한 마찬가지로 사람이 조류에 가까이 살게 되며 전파가 일어났다고 한다.
  • 2009년 H1N1 판데믹은 1918년 스페인 독감과 1930년대 돼지독감과 비슷한 종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는데, 좁은 공간에 밀집해 사육하는 돼지 무리는 바이러스 변형과 증식에 이상적인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 2012년 발견되어 이후 몇 차례 유행이 있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 (MERS)의 경우 박쥐에서 시작되어 낙타가 사람 전파의 중간 숙주 역할을 했다.
  • 2014년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의 경우 삼림 벌채와 팜유 농장 단일 경작으로 인해 과일박쥐가  중앙아프리카에서 서아프리카로 대거 이주하여 점점 줄어드는 숲에서 원숭이와 가까이 살게 되었다. 벌채꾼들과 다국적 농산물기업에 의해 땅이 줄어들고 착취되는 가운데 현지 주민들은 야생 동물의 고기 섭취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라이베리아, 기니, 시에라리온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로 자원 착취뿐만 아니라 IMF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보건의료 공적 지출도 삭감해야 했다.
  • 코로나19의 발생은 SARS의 경로와 유사해 보인다.
  • 판데믹이 21세기에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 생태학적 원인을 알게 되면서  “원 헬스” 개념이 점점 더 정치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원 헬스 개념 아래 인간, 동물, 지구환경 전문가들이 모이고 있지만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고, 지구 온난화를 막고, 물질주의적 성장을 제한하는 사회학적⋅정치경제학적 분석이 없이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 WHO 전문가 조사단이 결론내린 코로나 기원설인 인간의 생태학적 침해에 대해서는 그리 주목도가 높지 않고, 서구 언론은 중국이 코로나 기원을 숨기고 사실 실험실에서 유출되었다고 하는 음모론만을 보도하곤 한다. 이제 우한 조사에 대해 신뢰가 낮음을 토대로 실험실 재조사를 주장하기까지 한다.

 

판데믹으로부터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1. 충분하고 안정적이고 유연한 재정지원
  • WHO는 만성적으로 재원이 부족하다. 위기 대응 비상 기금은 모자라고 WHO 위기대응 조직에는 재원이 모자라 채용을 못 하고 있는 자리가 수백개이다. 판데믹 대응을 재정지원하고 조정하는 이해관계자 연합이지만 WHO가 회원일 뿐 주도하지도 못하는 코로나 판데믹  기술 개발 접근 프로그램 (ACT-A) 또한 2년 간 160억 달러가 부족하다고 하였다. 유엔 인도주의 대응 기금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 WHO은 회원국들로부터는 충분한 자금을 지원받지 못하고 2020년 출범한 WHO재단을 통해 민간 기업 및 재단의 기부를 더 받을 계획이다. 재단이 연간 10억 달러를 모금해 10% 투자 수익을 내면 (상당한 장및빛 전망) 연간 1억 달러 수익을 내어 일부가 WHO에 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WHO 재단의 대표로 취임한 전직 제약회사 임원이자 게이츠 재단 선임자문이었던 Anil Soni는 재단이 제약회사와 협력하면 WHO는 의약품의 사전승인에 협조적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빌 게이츠와 그의 재단, 제약회사들의 독점적 이익의 유대 관계는 잘 알려져 있고 이들은 코로나 백신, 치료제, 진단기기 등 의료제품의 트립스 지적재산권 유예를 방해해 왔다.
  • WHO의 독립적 전문가 지위를 해치지 않고 공중보건 위기 준비 및 대응 자금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유일한 방법은 회원국 의무 기여분담금과 비구속성 원조를 늘여가는 것이다.

 

*D1.2 자선사업 자본주의와 판데믹 탐욕/폭식 (생략)

 

  1. 국가의 준비와 책무성
  • WHO 위기대응 프로그램의 독립 감시⋅자문 위원회의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들이 판데믹 준비에 미흡했던 반면, 판데믹 이전 IHR에 따라 핵심 역량을 갖추고 준비 태세를 평가했던 것들이 실제 판데믹 대응 성과와는 별 관련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판데믹 대응의 효과는 범정부적 대처, 여성 리더십, 정부의 투명성, 효율적 대중 소통, 정치지도자들의 책무성에 달려 있으며, 특히 민중과 정부의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 개인주의적이고 정치인과 과학자에 대한 신뢰가 낮은 문화 하에서는 마스크 착용, 락다운, 거리두기 정책의 효과가 낮았고, 사회적 불평등이 높은 곳에서는 연대의 원리에 기반한 대응 조치가 잘 수용되지 않았다.

 

  1. 연구 개발 및 생산
  • 2014년 에볼라 유행 대응 이후 연구개발에 대한 계획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이 모아지고 위기 준비와 대응을 위한 연구개발 청사진 개념도 확장되었지만, 그렇다고 WHO 주도의 계획이 실제로 코로나19 판데믹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연구개발 지원 증가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는 미지수이다. ACT-A는 의도적으로 WHO 조직 외부에 만들어졌으며, 백신 가격 협상은 불투명했던 반면 가격은 후하게 쳐 줬고 정부 지원으로 만들어진 백신의 지적재산권을 공개하기 위한 장치도 없었다. 
  • 국가 내 생산 역량도 중요한데, 태국과 브라질은 잘 갖춰진 공공 생산 역량이 있어서 강제 실시 협박 등 정부 주도 협상이 가능했고 다국적 제약회사가 생산을 일부 이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중소득국 국가가 공공 연구개발 및 생산 역량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교훈으로, 아프리카 질병관리본부는 대륙 전체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한다.
  • 다국적 제약회사는 백신 연구개발 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C-TAP에 참여하지 않고 백신 생산 역량 확대에 저항했다. 고소득 국가들은 연구개발 지원에 이러한 강제조항을 넣지 않거나 제약회사의 C-TAP 불참을 지지하고 트립스 유예도 반대함으로서 제약회사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백신 분배를 위한 코백스 기획은 전체 백신 필요량의 20%만 지원하기로 제한을 두었고 이는 집단 면역 달성 목표에 대한 거부나 마찬가지였다. 코백스 기획은 단일 대량 구매자로서 가격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없게 되었고, 이 결정에 대한 코백스의 창립 구성원이기도 한 세계제약협회연맹(IFPMA)의 역할은 공개되지 않았다.

 

WHO와 미래 판데믹 대응 준비를 위한 길은?

  • 현재 WHO는 IHR를 개정하고 새로운 판데믹 조약을 협상하려 하고 있다.

 

  1. IHR 개혁
  • 현재 IHR 하에서 국제 공중보건 위기 비상사태 (PHEIC) 선언은 하느냐 마느냐 뿐이라서 수년간 국제 공중보건 경보 (IPHA) 등 중간 단계의 경보를 둬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경보 선언을 하려면 꼭 IHR을 개정하지 않고 WHO 사무총장이 비상사태 위원회에 경보를 발령할 건지 자문을 구하는 걸로 충분할 수도 있다.
  • IHR 핵심 역량과 합동평가가 실제 판데믹에 대한 국가 대응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대중과의 과학적 소통, 대중 신뢰 확보, 다부문⋅다부처간 협력과 정책 일관성, 포용적 정책 및 의사결정, 사회경제적 부담의 공유 등은 IHR에는 없었던 부분들인만큼 이 경제적, 문화적 역량을 IHR에 규정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 IHR및 공중보건위기 비상사태 위원회의 결정에 회원국이 잘 따르는지, 권고 수준을 뛰어넘는 추가 조치에 대한 감사나 제제는 규정되어 있지 않다. WHO에게 해당 국가 허가가 없는 현장 조사 권한을 부여하는 방법도 언급되지만 강력한 주권국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반면 사후 책임성을 강화함으로서 판데믹 대응시 위기 관리의 정치적 실패, 부적절한 추가 조치, 투명성 부재 등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1. 판데믹 조약
  • 수년간 WHO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말들이 일부 있었고, 2021년 3월 유럽 국가들과 WHO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러시아, 중국, 미국 등은 제외) 새로운 판데믹 조약이 제안되었다. 독립 패널과 IHR 리뷰 위원회 보고서에서도 공통적으로 판데믹 조약의 신설을 권고했다.
  • 이 판데믹 조약이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어떤 조약 형태를 띌 것인지 구체적인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조약을 급하게 진행시키려는 움직임에 다소 당황스러운 시선이 있었다. 회의적인 이들은 판데믹 조약 논의는 트립스 유예 논쟁과 백신 공급의 실패로부터 관심을 돌리려는 연막작전이라고 까지 의심했다. 그래도 조약은 아래와 같이 여러 유용한 목표가 있을 것 같다.
    • 국가의 판데믹 예방, 준비, 대응 책무성의 증가 (사후 평가)
    • 국제 공중보건 위기 사태 선언과 강제적 특허 공유 조치를 연결
    • 새 감염병을 출현시키는 생태학적 파괴 중단
  • 국가가 판데믹 대응 계획⋅실행⋅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게 WHO의 큰 약점이다. 공개적으로 독립적 전문가가 행하는 사후 평가 조치는 좋은 배움 기회이자 정부의 책무성 담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칭찬할 것은 하고 부끄러운 점은 반성하는 이러한 제도적 메카니즘은 국제노동기구, 세게무역기구, 인권 관련 조약, OECD, IMF 등에는 이미 갖춰져 있다.
  • 조약의 두 번째 목표는 연구개발과 생산을 빠르게 촉진하는 것일테다. C-TAP 등 메커니즘을 통해 강제적으로 특허 공유가 되도록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연구개발에 자금을 지원하는 기관과 선구매 계약에 포함되어 강제되도록 해야 한다.
  • 판데믹 조약은 새로운 감염병 출현의 원인이 되는 생태학적 파괴를 중단하는 내용을 넣어야 한다. WHO가 독립적 전문가 역량을 확보해 신종 인수공통 전염병 출현의 확률을 높이는 고위험 산업 및 개발 사례를 조사 및 공개하고 회원국들이 위험 경감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 아직 현 판데믹이 진행 중이고 트립스 지재권 유예 방안이 협상 중인데 다음 판데믹에 초점을 맞춰 조약 협상에 진력하게 되면 중저소득국의 외교적 역량에 큰 부담이 될 뿐이다 (이게 목적일 수 있다). WHO에서 판데믹 조약 초안을 논의하게 될 2021년 11월은 WTO에서 코로나19 지재권 유예 방안에 대한 합의가 도달될 시점이기도 하다.

 

판데믹 예방⋅준비⋅대응의 정치경제학

  • 현재 세계화 하의 제국주의적인 경제적 양상은 불공정 무역, 조세 회피, 부채 덫,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중저소득국의 원자재 및 값싼 노동력 공급 역할로의 제한 등이 있다. 이로 인해 보건의료체계가 취약해지고, 분쟁과 이주가 발생하고, 현지 제약 역량은 떨어지고, 백신을 구매할 재정적 역량이 충분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 모두가 코로나19 판데믹 하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 이 제국주의적 구조와 동학은 현재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 하에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띈다. 미중 대결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하에서 WHO를 괴롭히고 서구 언론에서 반중국 프로파간다 및 혐오가 늘어나게 된 형국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이는 백신외교에도 나타났는데 중국은 내부 역병 전파 차단에 성공한 뒤 국내 백신접종을 늦추면서 타국에 백신을 수출하거나 지원하길 우선시했다.
  • 미국은 자국 백신 제약회사들이 공급을 조정하면서 가격과 이윤을 유지하려는 걸 지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판데믹 대응 자체에는 리더십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코로나 백신 공급은 불충분하고 특허를 쥐고 있는 백신 생산업체들의 힘은 강력하다.
  • 판데믹 이후 단기적으로는 판데믹 기간 동안 주저앉은 공급 체인 때문에 소비자 수요가 공급량을 훨씬 앞지를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현 자본주의가 인구, 생태계, 전지구적 평형성 측면에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 코로나19는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소수자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덜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더 가난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취약한 제도적 역량 때문에 더 고통받는다.
  • 자본주의는 성장에 의존하고, 성장을 추동하는 힘은 돼지와 가금류 농장을 키워가고 인간의 자연 생태계 침탈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자선자본주의의 재정당화 역할 또한 핵심적인데,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이 한계에 봉착할 때 자선자분주의는 좋은 일에 돈을 대고 신자유주의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게 만든다. 특히 자선자본주의의 세계 보건 정책에서의 특징적 양상은 기술적 해결에의 협소한 집착으로, 수직적 질병퇴치 사업 (폴리오,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 등)은 질병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원인은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 이 장에서는 공중보건 위기 관리를 더 잘 하기 위한 국제⋅국내 제도적 개혁 방안을 다루었다. 판데믹 대응의 있어서의 실패가 사실 더 광범위한 체제의 구조, 권력, 동학에 기인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판데믹 대응에 효과적인 전략은 이 제도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또 이 문제를 재생산하는 구조적인 힘을 교정하는 것이어야 한다.